[교양 있는 하루] 경제학 개론 (실전 응용) ― 코인과 스테이블코인, 디지털 달러의 역설

1. 서론: 불안정한 세상에서 태어난 ‘안정된 코인’

스테이블코인(stablecoin)은 이름 그대로 ‘가격의 안정성’을 약속하는 암호화폐다.

비트코인의 극심한 변동성은 ‘교환수단’으로서의 기능을 제한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장은 “달러에 고정된 디지털 자산”이라는 해법을 내놓았다.

그러나 역설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스테이블코인은 ‘탈중앙화’를 지향하는 코인 생태계 안에서 ‘중앙화된 달러’를 복제한다.

즉, 중앙 없는 시스템이 중앙의 신뢰를 흉내 내는 모순이다.

 

2. 스테이블코인의 구조: 담보와 알고리즘의 세 가지 모델

스테이블코인은 본질적으로 ‘신뢰의 설계 방식’에 따라 세 가지로 구분된다.

(1) 법정화폐 담보형 (Fiat-Collateralized)

대표: USDT (Tether), USDC (Circle)

이 모델은 실제 달러(또는 단기 국채, 예금)를 은행에 보관하고,

1:1 비율로 코인을 발행한다.

즉, USDC 1개는 실제 은행 계좌 속 1달러를 의미한다.

문제는 이 구조가 블록체인 밖(off-chain) 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탈중앙화를 표방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전통 금융기관의 신뢰에 다시 기댄다.

(2) 암호자산 담보형 (Crypto-Collateralized)

대표: DAI (MakerDAO)

이 모델은 다른 암호자산(ETH 등)을 초과 담보로 맡기고 코인을 발행한다.

예를 들어, 150달러어치의 이더를 맡기면 100달러 가치의 DAI를 발행하는 구조다.

이는 탈중앙화 원칙을 지키지만, 담보자산이 급락할 경우 담보청산(liquidation)이 발생한다.

즉, 가격 안정성을 얻기 위해 과잉 담보라는 비효율을 감수해야 한다.

(3) 알고리즘 기반형 (Algorithmic Stablecoin)

대표: UST (Terra), AMPL

담보 없이 수요·공급 조절 알고리즘으로 가격을 유지한다.

이론상 매력적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신뢰의 진공 상태’다.

대표적 사례인 테라(UST)는 2022년 붕괴를 통해

“알고리즘은 신뢰를 대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3. 디지털 달러의 이중 구조: 신뢰의 모방 vs 신뢰의 복제

스테이블코인은 겉으로는 달러의 ‘복제물’처럼 보이지만, 경제학적으로는 달러 시스템의 유사체(simulacrum) 다.

이 둘의 가장 큰 차이는 보증 주체의 위치에 있다.

  • 달러: 국가와 중앙은행이 ‘최종 지급 능력’을 보증한다.
  • 스테이블코인: 민간 발행자 또는 스마트컨트랙트가 ‘간접적 지급 능력’을 보증한다.

결국 스테이블코인은 달러의 기능을 모방하지만, 달러의 ‘주권적 신뢰’를 복제하지는 못한다.

이 차이는 위기 상황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미국 은행 시스템은 연준이 개입하지만,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담보 청산 외엔 대응 수단이 없다.

이로 인해 스테이블코인은 달러를 모방한 비국가 화폐, 즉 ‘비공식 통화정책의 사적 실험’으로 정의할 수 있다.

 

4. 사례 분석: USDT·USDC·DAI의 구조 비교

구분
USDT (Tether)
USDC (Circle)
DAI (MakerDAO)
담보 형태
법정화폐·채권
법정화폐·국채
암호자산(ETH 등)
발행 주체
민간기업 (Tether Ltd.)
민간기업 (Circle)
DAO (탈중앙조직)
운영 방식
중앙집중 관리
반중앙적 투명성
스마트컨트랙트 자동화
리스크
투명성 부족
은행 의존성
담보자산 변동성
철학적 지향
실용적, 비탈중앙
규제친화적
탈중앙화 이상주의

이 표에서 보듯, 세 모델은 ‘신뢰의 위치’를 다르게 설계했다.

USDT는 “결과만 중요하다”는 실용주의, USDC는 “감독과 투명성의 균형”, DAI는 “완전한 탈중앙화의 꿈”을 선택했다.

하지만 경제 시스템은 현실에서 작동해야 한다.

결국 시장 점유율은 ‘신뢰의 효율’을 더 잘 구현한 USDT와 USDC가 장악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5. 통화정책의 복제 실험과 그 한계

스테이블코인은 전통 통화정책의 핵심 요소 ― 공급, 이자율, 유동성 ― 을 블록체인 환경에서 모방한다.

그러나 중앙은행이 가진 거시적 도구(금리 조정, 유동성 공급, 예금 보증)는 코드로 완벽히 구현되지 않는다.

즉, 스테이블코인은 정책은 복제했지만, 제도는 복제하지 못했다.

달러가 제도로서의 화폐라면, 스테이블코인은 알고리즘으로 구현된 기대치(expectation)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스테이블코인은 금융 안정성보다는 유동성의 편의성에 초점을 맞춘, ‘준(準)화폐적 자산’으로 규정된다.

 

6. 결론: “달러의 복제”가 아닌 “신뢰의 실험”

스테이블코인은 금융의 불확실성 속에서 태어난 인간의 새로운 신뢰 실험이다.

그러나 그 신뢰는 여전히 인간의 언어 ― “보증, 담보, 개입” ― 을 떠나지 못한다.

경제학적으로 말해, 스테이블코인은 달러의 복제가 아니라, 달러 신뢰 모델의 분산 시뮬레이션이다.

이 실험은 완벽하지 않지만, 화폐가 제도의 영역에서 기술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거대한 과도기적 징후임은 분명하다.

결국, 이 코인들의 진짜 가치는 “달러를 닮았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덜 의존적인 신뢰를 만들었는가”로 측정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