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있는 하루] 경제학 개론 (실전 응용) ― 루나 사태, 신뢰가 무너진 날

2021년의 코인 시장은 광기와 신념이 공존했다.

누군가는 그것을 “금융의 미래”라 불렀고, 누군가는 “거대한 폰지의 리허설”이라 말했다.

그 중심에는 하나의 이름이 있었다 — 루나(LUNA).

루나는 단순한 코인이 아니었다.

그건 ‘탈중앙화된 달러’, 즉 “국가 없는 화폐”라는 꿈의 실험이었다.

그러나 그 실험은 단 72시간 만에 무너졌다.

수백만 명이 투자금을 잃었고, 시장은 인간의 본성 앞에서 다시 무릎을 꿇었다.

루나 사태는 단지 한 프로젝트의 붕괴가 아니다.

그건 기술과 욕망이 처음으로 정면 충돌한 날이었고, “신뢰가 무너지는 속도”를 전 세계가 실시간으로 목격한 사건이었다.

1. 서론 ― “탈중앙화된 달러”라는 꿈

2021년, 한국 개발자 권도형이 만든 블록체인 프로젝트 ‘테라(Terra)’와 ‘루나(Luna)’는 전 세계 암호화폐 시장의 신뢰를 뒤흔든 사건의 주인공이 됐다.

그들의 슬로건은 단순했다.

“은행이 아닌 코드로 만든 달러.”

이 프로젝트는 달러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 UST(테라USD)와 그 가치를 유지하는 자매토큰 ‘루나’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UST 1개의 가치를 1달러로 유지하기 위해 루나를 태워(소각) 새 UST를 발행하고, 반대로 UST가 1달러 밑으로 떨어지면

UST를 태우고 루나를 찍어내는 구조였다.

겉으로 보면 완벽했다.

“담보 없이도 안정적 가격을 유지한다.”

이건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을 코드로 구현한 실험이었다.

2. 20% 고정이자의 함정 ― 신뢰가 수익으로 변한 순간

테라 생태계의 결정적 성공 요인은 ‘앵커 프로토콜(Anchor Protocol)’이었다.

UST를 예치하면 연 20%의 이자를 지급했다.

이는 전 세계 어느 은행도 제공하지 못하는 수익률이었다.

그러나 그 ‘이자’의 원천은 생산이 아니라 신규 자금의 유입이었다.

즉, 신뢰가 수익으로 전환된 구조였다.

새로운 투자자가 예치한 UST가, 기존 투자자의 이자로 지급되던 금융의 착시였다.

이는 일종의 포지티브 피드백 루프(positive feedback loop) 였다.

예치금이 늘수록 신뢰가 커지고, 신뢰가 커질수록 더 많은 돈이 들어왔다.

하지만 모든 버블이 그렇듯, ‘누군가 빠져나가려는 순간’ 균형은 무너진다.

 

3. 붕괴의 시작 ― 알고리즘의 약점이 드러나다

2022년 5월, 시장의 금리 인상과 투자심리 위축으로 대규모 자금이 빠져나가자, UST의 가치가 1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이건 단순한 시세 하락이 아니라, 신뢰 붕괴의 시작이었다.

UST가 1달러 밑으로 떨어지면 루나를 발행해 가격을 복원해야 했다.

그러나 매도세가 폭발하자 루나 발행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루나의 공급이 폭증하면서 그 자체의 가치도 붕괴되었다.

결국 루나의 가격은 하루 만에 99% 폭락, 수조 원 규모의 시장가치가 증발했다.

이른바 “죽음의 나선(Death Spiral)”이었다. 한마디로, ‘달러를 지키기 위해 루나를 찍었고, 루나를 찍으면서 달러를 잃었다.’

 

4. 기술의 실패인가, 인간의 욕망인가

루나의 붕괴는 기술의 문제라기보다 욕망의 문제였다.

사람들은 20%의 이자가 ‘탈중앙의 혁신’에서 나온다고 믿었다.

하지만 실상은 중앙은행보다 더 중앙화된 구조였다.

프로토콜의 설계자, 자금 조달자, 운영 커뮤니티 모두 권력의 집중을 피하지 못했다.

탈중앙을 외쳤지만, 그 시스템을 움직인 것은 알고리즘이 아니라 탐욕과 군중심리였다.

루나는 “코드로 만든 은행”이 아니라, “인간의 심리를 복제한 코드”였다.

 

5. 후폭풍 ― 세계가 배운 세 가지 교훈

루나 사태는 전 세계 금융당국을 각성시켰다.

미국은 스테이블코인 법제화 논의를 급속히 진행했고, EU는 MiCA(암호자산시장법)를 통과시켰다.

한국 역시 ‘디지털자산 기본법’ 제정에 속도를 냈다.

이 사건이 남긴 교훈은 세 가지다.

  • 탈중앙화는 책임의 분산이 아니다. -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면, 결국 아무도 지탱하지 않는다.
  • 고정이자는 신뢰의 시험대다. - 20% 수익은 기술이 아니라 심리의 약속이었다.
  • 신뢰는 수학으로 증명할 수 없다. - 기술이 아무리 완벽해도, 인간의 두려움 앞에선 무너진다.

6. 결론 ― 알고리즘이 아닌, 신뢰의 복원

루나의 붕괴는 단순한 코인 사건이 아니다.

그건 “신뢰가 수학으로 대체될 수 있는가”라는 인류 최초의 실험이 실패한 순간이었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루나는 ‘신용화폐의 복제 시도’였다.

그러나 신용(credit)은 코드가 아니라 기대(expectation) 에서 나온다.

그 기대는 인간의 집단 심리에 의존한다.

결국 루나의 실패는 인간의 본성, 즉 탐욕과 불안이 동시에 작동한 결과였다.

기술은 인간의 욕망을 대신 계산할 수 있지만, 그 욕망을 제어할 수는 없다.

루나 사태는 그 사실을 숫자로 증명한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