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불안은 경제의 숨겨진 통화다
한국의 부동산 시장은 숫자로 움직이지 않는다.
불안으로 움직인다.
집값이 오를 때도, 내릴 때도, 그 근저에는 언제나 “놓칠까 봐” 혹은 “망할까 봐”라는 심리가 있다.
2020년대 초반의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열풍은 탐욕이 아니라 불안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불안이 희소성을 만들고, 희소성이 가격을 만든다.
그 불안이 사라지는 순간, 시장은 조용히 식는다.
경제학 교과서는 수요와 공급으로 시장을 설명하지만, 한국의 도시경제를 이해하려면 ‘심리의 총량’을 읽어야 한다.
사람들은 데이터를 보고 움직이지 않는다.
뉴스의 뉘앙스, 지인의 매매 경험, 그리고 "남들도 다 산다"는 소문이 더 강력하다.
그 순간부터 가격은 더 이상 숫자가 아니라, 집단 심리의 곡선이 된다.
🏙 도시가 만든 집단적 불안
서울은 도시가 아니라 심리다.
한강을 기준으로 한 평(3.3㎡)당 가격은 어떤 구역에서는 천만 원, 어떤 구역에서는 1억 원을 넘는다.
도시의 공간 격차는 곧 심리 격차다.
강남은 ‘안정의 신화’를, 강북은 ‘추격의 서사’를 상징한다.
이 공간의 상징성은 단순한 위치 차이가 아니라, 사람들이 자기 존재를 증명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부동산 불평등은 경제문제이기 전에 정체성 문제다.
어떤 이는 “내가 서울에 없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고, 또 어떤 이는 “이 정도면 버텼다”는 안도감으로 스스로를 위로한다.
공간은 이제 단순한 좌표가 아니라, 존재의 위계가 되었다.
📉 정책의 역설 ― 신뢰를 되찾으려는 시도가 다시 불안을 만든다
정부가 규제를 내리고 세율을 조정할 때마다 시장에는 새로운 불안이 태어난다.
“이 정책이 언제까지 유지될까?”
“다음 정권에선 또 바뀌지 않을까?”
정책은 불안을 진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불안을 재조립한다.
그 결과는 ‘정책의 피로감’이다.
사람들은 이제 금리나 세금보다 정부에 대한 신뢰를 먼저 잰다.
정책이 아닌 사람의 말을 믿고, 데이터가 아닌 여론의 감정선을 따른다.
이건 단순한 비이성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가 약해진 사회의 자연스러운 생리다.
🧩 결론 ― 공간의 심장은 신뢰로 뛴다
부동산은 결국 ‘신뢰의 자산’이다.
불안이 커질수록, 사람들은 더 견고한 벽을 원한다.
그 벽은 실제 아파트의 콘크리트일 수도, 혹은 마음속의 확신일 수도 있다.
한국의 도시는 지금도 확장 중이지만, 그 중심에는 콘크리트보다 무거운 감정이 자리한다.
집을 산다는 건 단순한 재테크가 아니라 “미래를 믿는다”는 행위다.
따라서 우리가 직면한 진짜 리스크는 금리도, 공급도, 세금도 아니다.
믿음이 흔들리는 사회에서, 누가 공간을 지탱할 것인가 이 질문이 앞으로의 경제학이 다뤄야 할 새로운 좌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