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급 부족의 착시: 한국 부동산 문제는 ‘수량’이 아니라 ‘입지’다
한국 부동산 담론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공급 부족’이다. 집이 모자라서 가격이 오른다는 설명은 직관적이고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이 설명은 불완전할 뿐 아니라, 때로는 현실을 거꾸로 오해하게 만든다.
지금의 문제는 집이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원하는 자리에는 공급이 없고, 필요하지 않은 자리에만 공급이 늘어나는 구조에 가깝다.
즉, 우리는 ‘절대량 부족’이 아니라 ‘공간 배치 실패’의 시대를 살고 있다.
🏙️ 전국 주택 수는 정말 부족한가
먼저 숫자부터 보자.
2023년 기준
대한민국 전체 가구 수: 약 2,200만 가구
전국 주택 수: 약 2,400만 호
이미 주택 수가 가구 수를 초과하는 구조다.
수치상으로만 보면 우리는 오히려 ‘주택 과잉 국가’에 가깝다.
그렇다면 왜 체감은 항상 “집이 부족하다”일까.
문제는 ‘총량’이 아니라 ‘위치’다.
전체 주택의 약 45% 이상이 수도권에 몰려 있지만,
수도권 인구 비중은 이미 약 51% 이상으로 올라와 있다.
즉, 인구 집중 속도에 비해
양질의 주택 공급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구조다.
🌆 수도권만 보면, 공급과 수요의 시간차가 만들어지는 착시
수도권만 따로 보자.
2018~2023년 수도권 입주 아파트 물량:
연평균 약 23~27만 세대 수준
겉으로 보면 꽤 많은 공급이다.
하지만 동시에 같은 기간 수도권 순유입 인구는
연간 평균 약 20~25만 명 수준을 기록했다.
여기에
1인 가구 증가율과
소형 가구 분화까지 더해지면 실질 주거 수요는 입주 물량만으로 흡수되지 않는다.
즉,
숫자는 늘었지만 수요 또한 구조적으로 압축되어 이동해 온다.
이게 바로 “공급을 했는데 부족을 느끼는 이유”의 핵심이다.
📊 미분양이 있는데 왜 부족하게 느껴질까
2024년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 수: 약 7만~9만 호 수준
이 수치만 보면 “집은 남아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하지만 지역별로 보면 완전히 다른 그림이 나온다.
- 서울: 미분양 거의 없음 (특히 핵심 지역)
- 수도권 외곽 일부: 제한적 미분양
- 지방 중소도시: 대량 미분양 누적
즉, 미분양은 있는데
우리가 살고 싶은 지역에는 미분양이 없다.
이게 핵심이다.
사람이 몰리는 지역과 집이 쌓이는 지역이 서로 다르다.
이걸 동일한 ‘공급 부족’이라는 말로 묶는 순간 문제 진단 자체가 어긋난다.
🏗️ 왜 정책은 항상 ‘엉뚱한 공급’을 만들게 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토지와 인프라 때문이다.
교통망이 없는 지역, 일자리가 없는 지역, 교육·의료·문화 인프라가 약한 지역은, 아무리 많은 아파트를 지어도 사람이 정착하지 않는다.
그러나 공급 정책은 대개 토지를 확보하기 쉬운 곳, 즉 이미 생활 중심지에서 벗어난 지역에 집중된다.
그래서 실제로는 주택 ‘공급’이 아니라 주거 ‘확산’을 만들어낸다.
그 결과
도심은 밀도만 높아지고, 외곽은 빈집만 늘어나는 구조가 된다.
📉 공급 부족 담론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문제
“공급만 풀면 된다”는 논리는 편하지만 위험하다.
이 담론이 강화될수록 사람들은 위치, 접근성, 인프라 문제를 무시한 채 단순히 ‘물량’만을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집은 자동차 생산처럼 공장을 돌려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재화가 아니다.
주택은
입지 + 시간 + 네트워크
라는 공간 자산이다.
공급을 늘린다고 해서 입지가 복제되는 건 아니다.
그래서 집값 문제는 공급의 문제가 아니라 공간 독점 구조의 문제에 가깝다.
🧭 우리는 무엇을 착각하고 있었나
우리는 계속 “집이 부족하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원하는 위치의 집이 부족하다”가 맞다.
그리고 그 위치는 우연히 만들어진 게 아니라, 수십 년간의 개발, 교통, 자본 흐름이 누적되어 형성된 결과다.
그래서 이 문제는 단순한 공급 정책이 아니라 도시 구조 자체의 문제다.
다음 글에서는 이 구조의 핵심, 즉 재건축·재개발이 왜 낡은 집을 가장 비싸게 만드는지를 경제 구조로 해부해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