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부동산 시장에서 가장 역설적인 현상은, 가장 오래되고 허름한 집이 가장 비싸지는 구간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보통 상품은 시간이 지날수록 감가상각되지만, 재건축 대상이 되는 주택은 일정 시점을 지나면서 오히려 자산 가치가 폭발한다.
이 현상은 감성이나 기대심리의 문제가 아니라, 정확히 계산 가능한 ‘구조적 프리미엄’에서 발생한다.
🏗️ 재건축 아파트는 ‘주거’가 아니라 ‘권리’다
재건축 대상 아파트를 사는 것은 집을 사는 것이 아니라 미래 권리를 선구매하는 행위에 가깝다.
예를 들어 보자.
서울 강남 A구
- 준공연도: 1985년
- 용적률: 180%
- 기존 14층, 1,000세대 단지
이 단지가 재건축되어 용적률 300%까지 상향될 경우 약 1,600 ~ 1,800세대까지 늘어난다.
이때 핵심은 기존 소유자가 미래에 배정받을 새 아파트의 권리다.
그래서 사람들은 낡은 집이 아니라 “어떤 새집을 받을 권리인가”를 기준으로 가격을 매긴다.
📊 “추가 분담금”이 가격을 결정하는 공식
재건축 아파트 가격은 일반 아파트와 다른 방식으로 결정된다.
핵심 공식은 이거다.
향후 신축 아파트 가치 – 추가 분담금 = 현재 재건축 아파트 가치
예시를 들어보자.
해당 지역 신축 아파트 시세:
전용 84㎡ 기준 25억 원
재건축 대상 세대가 받을 신축 예상 금액:
전용 84㎡ 기준
조합원 추가 분담금: 약 7억 원
그렇다면 이 주택의 현재 가치는 25억 – 7억 = 18억 원이 된다.
그래서 지금 상태가 허름하든 지하 주차장이 없든 엘리베이터가 낡았든 가격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신축 아파트를 얼마에 받을 수 있느냐다.
🏚️ 그래서 ‘철거 직전’이 가장 비싸지는 이유
보통 사람들은 생각한다. “곧 철거될 아파트면 위험하지 않나?”
하지만 시장은 오히려 반대로 움직인다.
왜냐하면 불확실성이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다.
재건축 과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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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전진단 통과
- 정비구역 지정
- 조합 설립
- 사업시행인가
- 관리처분인가
- 이주 및 철거
- 착공
이라는 단계를 거치는데, 이 중 후반부로 갈수록 정책 리스크, 사업 리스크가 줄어든다.
그래서 보통 관리처분인가 이후 단계에서 가격이 가장 높게 형성되는 사례가 많다.
서울 주요 재건축 단지를 보면 관리처분 이후 구간에서 3년 사이 30~50% 이상 상승한 사례도 적지 않다.
🏗️ 재건축이 주변 가격까지 끌어올리는 구조
재건축은 개별 단지의 문제가 아니다.
그 지역 전체의 가격 구조를 바꾼다.
예를 들어 한 단지가 신축 프리미엄을 형성하면 주변 노후 아파트들도 “미래 재건축 기대감”을 반영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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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건축 대상 단지: 실거주보다 투자 자산화
- 주변 노후 단지: 기대감 상승
- 인근 신축 단지: 가격 기준점 상승
이렇게 되면서 한 지역 전체가 레벨업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이게 서울 강남권, 목동, 잠실, 압구정 등이 끊임없이 가격 상단을 갱신해 온 이유다.
💸 문제는 여기에 ‘현금 장벽’이 생긴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구조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지 않다.
앞서 예시에서 추가 분담금만 7억 원이다.
즉
재건축의 과실은 이미 자산을 보유한 사람만 누릴 수 있는 구조다.
그래서 재건축은 도시 재생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산 계층을 더욱 고정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노후 주택 거주자가 도시 재생의 수혜자가 아니라 오히려 밀려나는 사례가 늘어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재건축은 집을 새로 짓는 게 아니라, 도시 계층을 재편한다
결국 재건축은 건물을 바꾸는 사업이 아니라 거주 구조를 교체하는 프로젝트다.
그 결과 도시는 더 고급화되고 더 밀집되고 더 배타적인 공간이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재건축은 도시의 미래를 다시 쓰는 도구가 된다.
그게 이 사업이 주거 문제가 아니라 정치·자본·권력의 문제로 연결되는 이유다.